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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면 왜 말을 못할까?”- 감정표현과 억제의 심리에 대한 탐구

by 목목헌 2025.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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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히는 순간,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화를 경험합니다. 누군가가 내 감정을 무시했을 때, 뜻밖의 배신을 당했을 때, 혹은 단지 일상의 피로가 누적되어 감정이 폭발할 때그 순간 우리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화가 나면, 그 감정을 분명히 말로 표현해야 할 시점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말재주의 문제가 아닙니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강한 분노와 같은 감정이 유발되면, 우리의 뇌는 위협에 대응하는 생존 본능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특히 뇌의 편도체(amygdala)’가 활성화되면서, 합리적인 사고와 언어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기도 합니다. , 화가 나면 왜 그랬어?” “지금 너무 기분이 나빠같은 간단한 말조차 떠오르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말이 막히는 것은 우리의 신체가 감정의 홍수를 감당하지 못해 생각보다 반응을 먼저 선택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말보다는 침묵, 논리보다는 억제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감정을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 그 시작은 어린 시절에서

 

많은 사람들은 화가 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꾹 눌러 참는 경향이 있습니다. “화를 내면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말하면 관계가 더 틀어질까 봐혹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우리는 마음속에 화를 꾹꾹 눌러 담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억제의 습관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어릴 적, 부모나 어른들이 화를 내면 못된 아이야”,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속상해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입니다. 아이는 이러한 말을 들으며 감정을 표현하면 사랑받지 못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무의식 중에 내면화하게 됩니다.

또한 학교나 사회는 감정보다 규범과 질서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참아야 해”, “화를 내지 말고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해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차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됩니다.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화가 날 때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됩니다. 마음속에서는 뜨거운 감정이 타오르는데, 겉으로는 차가운 침묵으로 반응하는 이 이중적인 상태는 우리 자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며, 때론 후회와 자기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화가 났을 때 말을 꺼내지 못한 경험이 반복되면, 우리 몸과 마음은 그 감정을 그대로 기억하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의 억제는 심리적 부채를 남긴다고 이야기합니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 깊숙한 곳에 고여 있다가, 뜻밖의 순간에 터져 나오거나,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계속해서 감정을 억제하는 사람들은 만성적인 피로, 두통, 위장 장애 같은 증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체화 현상은 말하지 못한 감정이 몸을 통해 표현되고자 하는 무의식의 언어입니다. 더불어 감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불균형을 느끼거나, 정서적 거리감, 소외감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를 표현하지 못하면 그 감정은 자신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외부로 향하지 못한 분노는 종종 자기비난혹은 우울감으로 변질되며, “내가 왜 그때 말을 못했을까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화를 말하지 못한 경험은 일시적인 침묵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자존감, 관계, 건강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연습,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다행히 감정을 억제하던 습관은 표현의 연습을 통해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화가 났을 때, 감정이 고조되기 전에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은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지금 화가 나는 것 같아정도의 단순한 문장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경험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관계가 망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가 왜곡되고 상처받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때론 상대방도 우리의 감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으며, 우리가 말을 꺼내는 그 순간이 진짜 이해와 소통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혼자서 감정을 말로 풀어내기 어렵다면, 글로 써보거나 심리상담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경험은 감정표현의 회로를 서서히 회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며: 침묵의 벽 너머, 말의 용기를 향해

 

화가 나면 왜 말을 못할까?” 이 질문은 단순히 화에 대한 궁금증을 넘어, 우리가 얼마나 감정을 억제하며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우리 안에 고여 병이 되고, 말한 감정은 관계의 다리가 됩니다. 화가 났을 때, 그것을 억제하거나 폭발시키는 대신, 말로 표현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건강한 자신, 더 진실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있던 말이 있다면, 그 말을 천천히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

처음은 서툴고 어색하겠지만, 그 말은 분명히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입니다.

감정을 말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