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가 진짜 주인인가? – 삶의 책임에 대하여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는 마음이 무겁고, 때로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들의 말과 행동은 우리의 감정에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저 사람이 왜 나를 그렇게 대할까?", "나는 왜 저 사람을 도와줘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결국 '책임'이라는 개념에 닿게 됩니다. 이 책임이 바로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제(Task)’의 출발점이 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삶을 ‘과제’라는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며 반드시 마주치는 세 가지 과제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일의 과제, 우정의 과제, 그리고 사랑의 과제입니다. 이 과제들은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며, 우리가 진정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마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과제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과제를 대신 짊어지려 하거나, 자신의 과제를 타인에게 맡기려 합니다. 그 결과, 감정의 얽힘, 관계의 갈등, 삶의 피로함이 증폭됩니다. 아들러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로 ‘과제의 분리’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과제의 분리는 말 그대로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를 명확히 구분하여, 나의 과제는 내가 책임지고, 타인의 과제는 타인에게 맡긴다는 심리적 경계의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제를 분리하고, 더 나아가 진정한 자유와 성장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2. 과제의 소유자 찾기 – 이것은 누구의 문제인가?
과제의 분리는 단순한 이론 이상의 것입니다. 실제 인간관계 속에서 매우 실용적인 지침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문제는 누구의 과제인가?”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여 특정 직업을 강요한다고 해봅시다. 부모는 자녀의 행복을 바란다는 이유로 의사나 공무원, 교사와 같은 직업을 선택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직업을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살아가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 진짜 과제의 주인은 ‘자녀’입니다. 부모는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 선택하거나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예로, 직장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는 상사의 실망한 표정에 압박을 느끼며, 매일 자존감을 깎이듯 지내게 됩니다. 이때 그 사람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상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그의 과제인가, 나의 과제인가?”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상사의 몫입니다. 나의 과제는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처럼 문제를 대할 때마다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감정과 기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물론 그것은 냉정해지거나 무관심해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책임감은 과제의 경계를 명확히 할 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나의 과제를 진정으로 책임질 때, 그리고 타인의 과제를 존중할 때, 우리는 훨씬 건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3. 경계 짓기의 용기 – 냉정함이 아닌 성숙함
과제의 분리는 종종 ‘차가운 거리 두기’ 혹은 ‘이기적인 태도’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들러가 말한 과제의 분리는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자율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성숙한 인간관계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과제를 대신해주며 일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부모는 자녀의 숙제를 대신해주고, 연인은 상대방의 감정을 대신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결국 타인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의 자율성도 훼손시키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자주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놓으며 우울해할 때, 우리는 위로하려 애쓰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해주려 듭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감정, 삶의 자세, 선택은 결국 그 친구의 과제입니다. 우리는 옆에 있어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과제의 분리는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연결을 위한 준비입니다.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분리하고, 내 책임과 타인의 책임을 구분하는 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관계 속 건강한 거리두기이며, 진정한 존중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경계 짓기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실망을 감수해야 하고, 비난을 견뎌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바로 그 경계를 명확히 할 때 찾아옵니다. 그것이 아들러가 말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4. 과제 분리를 실천하는 삶 – 작지만 확실한 변화들
과제의 분리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꾸준히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해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다음과 같은 실천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과제의 분리를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감정의 경계를 그어보세요.
타인의 감정에 너무 몰입하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분노, 실망, 걱정은 그것이 표현된다고 해서 반드시 당신의 책임은 아닙니다. “저 사람이 화난 이유는 나 때문인가?”라고 묻기 전에, “그 감정은 누구의 책임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둘째, 조언 대신 경청하세요.
타인의 문제에 쉽게 개입하려 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 ‘이렇게 해봐’보다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들어줄게’라고 말해보세요. 조언은 때로 상대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 거절하는 연습을 하세요.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는 것은 당신을 소모시키는 일입니다. 나의 시간이 소중하고, 나의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미안하지만 지금은 도와줄 수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넷째, 나의 과제에 집중하세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목표와 가치에 집중해보세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삶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하세요.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쌓여, 우리는 점점 더 나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들러는 인간의 삶을 ‘용기의 연속’이라고 보았습니다. 과제를 분리하는 것은 결국, 타인과 나 사이에 경계를 세우고, 나만의 삶을 선택할 용기를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며 – 진정한 자유는 책임에서 시작된다.
아들러의 ‘과제의 분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자주 발생하는 갈등과 혼란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통찰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관계를 정리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를 보다 자유롭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지혜입니다.
우리가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명확히 구분하고, 각각의 삶에 책임을 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기대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실망에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무책임이 아니라, 나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성숙한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 자유는, 우리를 더 깊은 관계로, 더 큰 성장으로, 더 따뜻한 삶으로 이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