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싫어하는 마음은 죄가 아닙니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 중에는 마음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이유 없이 불편한 사람도, 설명할 수 없게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은 대체로 한 사람쯤은 꼭 존재합니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직장 동료이든, 이웃이든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또는 “싫어하는 감정은 나쁜 것이니 마음에서 없애야 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감정은 버튼 하나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란 제멋대로이기에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싫어하는 마음’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이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솔직한 반응입니다.
싫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곧 내가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징후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내게 위협을 가했거나, 무례했거나, 혹은 단지 나의 가치관과 충돌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마음의 성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2. 왜 그 사람이 싫을까? 감정의 뿌리 들여다보기
‘싫다’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질투이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움이기도 하며, 혹은 과거의 상처가 투사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왜 저 사람이 싫을까?”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들리거나, 그의 말투가 무례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거울처럼 내 불완전함을 비춰주는 탓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완벽주의적인 사람이 지나치게 느긋한 사람을 보면 답답함을 느끼고,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에게 거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때로 우리의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싫은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때로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3. 멀어지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의 불편함
더 복잡한 문제는,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없는 존재일 때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 직장 상사, 매일 마주치는 지인들과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마음은 불편하지만 관계를 끊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경계선 그리기입니다. 감정적으로 너무 가까워지지 않되,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은 지키는 것... 이는 일종의 심리적 거리두기입니다.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해선 거절의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건 좀 불편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혹은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기술이 때로는 나를 지키는 도구가 됩니다.
또 하나는 기대하지 않기입니다. 싫은 사람에게 변화나 이해를 기대하지 않는 것.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실망은 분노로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4. 싫은 사람을 통해 배우는 감정의 지혜
역설적이지만, 싫은 사람은 우리에게 가장 깊은 감정 수업을 안겨주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통해 분노, 불안, 질투, 실망 같은 감정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마주할 때,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동료가 항상 나의 성과를 무시하는 말을 할 때, 처음에는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러나 그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나는 왜 그의 평가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타인의 인정을 너무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감정의 뿌리를 탐색하는 과정은 때로 심리 상담이나 글쓰기, 명상과 같은 내면의 기술을 통해 진행됩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나를 더욱 자유롭게 만듭니다. 싫은 사람을 마주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5. 누군가의 ‘싫은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하듯, 누군가 역시 우리를 불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늘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지만, 어느 순간 ‘가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타인을 향한 시선도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단지 솔직한 피드백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비난으로 느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나는 바쁜 일상에 치여 인사를 하지 않았을 뿐인데, 상대는 나를 무관심한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은 겸손하게 관계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싫은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도 완벽하지 않기에, 너의 불완전함도 이해해볼게” 물론 이것은 그 사람을 완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무조건적인 분노와 혐오에서 벗어나 조금 더 평화롭게 관계를 조율해보려는 시도입니다.
6. 상처받지 않고도 따뜻하게 살아가는 법
삶이란 결국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에는 꽃길도 있지만, 가시밭길도 존재합니다. 싫은 사람은 그 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그 가시를 뽑아내지 못하더라도, 그에 찔리지 않고 걷는 법을 배울 수는 있습니다.
상처받지 않도록 따뜻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먼저 나의 감정을 나 스스로 돌보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감정 일기를 쓰거나,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 그리고 정기적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회복시키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관계의 무게를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과는 일적인 관계만으로, 어떤 사람과는 최소한의 인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모든 관계를 ‘좋은 관계’로 만들려고 애쓰는 대신,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현명할 때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기 입니다. 우리는 종종 싫은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놓칩니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인간 관계의 따뜻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7. 마치며: 불편한 마음 속에서도 성장하기
“누구나 한 명쯤은 싫은 사람이 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사실이자, 우리 삶의 진실입니다. 우리는 그 진실 앞에서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싫은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를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싫었던 사람도 ‘내 삶에 이런 교훈을 주었구나’ 하고 담담히 되뇌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싫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의 작은 지혜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