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나 한 번쯤은, 불편한 사람과 마주친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그중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마음이 맞지 않거나, 함께 있으면 유독 지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맞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를 끊어버릴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직장 동료, 친척, 친구의 친구, 심지어는 가족일 수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멀어지고 싶지만 완전히 끊을 수 없다면, 최소한 스스로를 지키는 선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거리두기는 결국 ‘말하기’에서 시작된다. 오늘 이 글에서는,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싫은 사람과 거리를 두는 말하기'의 기술과 태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말은 때로 벽이 되기도 하고, 다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벽을 세우되 매몰차지 않게, 어떻게 다리를 놓되 지치지 않게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2. 왜 우리는 싫은 사람과 거리 두기를 어려워할까?
거리 두기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관계를 끊는 것에 대한 죄책감
많은 사람들이 싫은 사람과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망설인다.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상대가 상처받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 특유의 정(情) 문화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2) 불편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
거리 두기를 시도하면 상대와 갈등이 생기거나, 애매한 긴장감이 감돌게 될까 봐 걱정된다. 그래서 차라리 참아버리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은 결국 자신에게 감정적 피로를 안겨주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병으로 번질 수도 있다.
3) 거절을 잘 배우지 못한 문화
‘싫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릴 때부터 금기시된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랐다. 예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거절’은 곧 ‘무례’로 해석되기 일쑤다. 그러나 거절과 무례는 엄연히 다르다. ‘나를 위한 선 긋기’는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3. 싫은 사람과 거리를 두는 말하기의 원칙
그렇다면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말하기’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원칙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1) 직접적이되, 공손하게
감정을 숨기고 돌려 말하면 오히려 오해를 낳는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싫어요’, ‘꺼져주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직접적이되 공손한 표현’이다. 예를 들어,
“그 이야기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힘들어져요. 우리 다른 이야기 해볼까요?”
이런 식으로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하되,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태도는 관계를 불필요하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거리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2) 요청이 아닌 선언의 말투
‘~해줄 수 있어요?’, ‘괜찮을까요?’와 같은 표현은 요청의 형태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싶을 때는 ‘요청’보다는 ‘선언’의 말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저는 이제 그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해요.”
“앞으로는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업무 위주로 소통하고 싶어요.”
이렇게 표현하면 상대는 내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조절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불쾌하게 여길 수는 있으나, 내가 취한 언어의 태도는 존중을 담고 있다.
3) 애매한 선긋기보다, 명확한 기준 세우기
“요즘 좀 바빠서…”, “몸이 안 좋아서 연락을 못 드렸어요” 같은 말은 일시적인 거리감을 줄 수는 있지만, 상대는 다시 시도하려 할 것이다. 만약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멀어지게 하고 싶다면 ‘일시적인 이유’가 아닌 ‘나의 기준’을 드러내는 표현이 필요하다.
“저는 요즘 인간관계에서 조금 더 단순하게 지내려고 해요.”
“개인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연락을 자주 드리지는 못할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은 ‘당신이 싫다’라는 감정적 메시지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만들 수 있다.
4. 상황별 예시로 배우는 거리 두기 말하기
실제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말하기의 예시를 몇 가지 살펴보자.
1) 직장에서 자꾸 사생활을 묻는 동료
“요즘 남자친구 생겼어요?”, “주말엔 뭐하고 놀았어요?” 이런 질문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대놓고 무례하게 거절하긴 어렵다. 이럴 때는,
“저는 사적인 이야기는 조금 조심스럽게 나누는 편이에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혹은,
“지금은 업무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다음에 이야기 나눠요!”
이런 식으로 ‘나의 성향’을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2) 매번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친구
듣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에너지가 빠지는 이야기만 반복하는 친구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네 이야기 들어주는 거 좋아하지만, 요즘 나도 조금 힘든 시기라… 조심스럽지만 이런 이야기는 조금 줄였으면 해.”
혹은,
“우리 요즘 밝은 이야기 한 번 해볼까? 기분 전환도 좀 하자.”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화의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3) 아무 때나 연락하고 만남을 요구하는 지인
“요즘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 약속은 조금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연락이 자주 되진 않을 거예요. 혹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연락의 빈도를 줄이는 것 자체도 거리 두기의 한 방식이다. 애초에 응답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상대도 빈도를 낮추게 된다.
5. 언어는 방패이자, 문이 될 수 있다.
사람 사이의 말은 칼이 될 수도 있고,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싫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너무 자주 상처받는 이유는, 방어막 없이 모든 감정을 흡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적절한 말로 방패를 세울 수 있다면, 불필요한 상처 없이 나를 지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벽만 쌓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때로는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마음이 열릴 수도 있고, 상대가 바뀌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지쳐버리면, 어떤 관계도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6. 마음이 다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기술
거리 두기의 핵심은 '존중'과 '솔직함' 사이의 균형이다.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되,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 솔직하되, 공격적이지 않는다. 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감정을 정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싫은 사람’이라는 감정 자체를 너무 죄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나 불편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며, 그것은 결코 미성숙한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에너지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
7. 마치며 : 당신의 마음을 위한 거리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에는 ‘적당한 거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누군가와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외로워진다. 그 균형을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말하기’다.
싫은 사람과 거리를 두는 말은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말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존중하고, 동시에 상대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가장 성숙한 방식의 소통이다.
그러니 이제는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들을, 부드럽되 단호하게 말해보자. 상처 주지 않되, 나를 잃지 않는 말로. 관계 속에서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언어라는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할 때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당신의 일상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