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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그림자, 마음속에 남은 이야기

by 목목헌 2025.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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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은 물처럼 흐르지만, 때때로 바위처럼 굳어 남는 조각이 있습니다. 특히 상처받았던 기억은 더욱 깊이 새겨져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살아오며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 이유 없이 내 마음을 찢고 지나갔던 사람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 기억 속의 이름들이 하나둘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복잡한 감정이 피어오릅니다.

그들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음속에는 묘한 감정이 일렁입니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어쩐지 설명할 수 없는 무거운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 감정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그런 감정을 품은 채 살아가는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마주쳤던 고통의 얼굴들, 그리고 그들의 끝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살아가기도 하지요.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 중 몇몇은 그런 부류였습니다. 사소한 말 한 마디, 무심코 던진 조롱, 반복되는 무시와 억압. 그들이 남긴 말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속에서 썩어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움보다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병을 얻고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암이라는 갑작스러운 병을 얻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심장마비로 별안간 생을 마친 이도 있었습니다. 공통점이라면, 그들의 마지막은 평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저 우연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마음 한 켠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불가사의함이 피어났습니다. 과연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요? 아니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균형의 법칙일까요?

업보라는 것은 공정하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

업보라는 말 앞에서, 마음은 묘하게 흔들린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업보(業報)”라는 단어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지은 행위, ()’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 ()’를 가져온다고 말하지요. 이는 종교적인 개념을 넘어, 삶의 균형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오랜 질문이 담긴 말이기도 합니다.

나를 괴롭힌 이들의 마지막을 보며 이 업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자신이 뿌린 고통의 씨앗을 수확한 걸까요? 아니면 단지 인생이라는 강물의 흐름 속에서 휩쓸려간 존재였을 뿐일까요?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게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분명한 악의를 갖고 타인을 괴롭히지만, 정작 그들은 긴 생을 누리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아가기도 합니다. 반면 누군가는 사소한 실수 하나로 깊은 대가를 치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정말로 업보라는 것은 공정하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들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 질문은 내가 살아온 삶의 태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여전히 잘 먹고 잘 사는 그들, 마음속의 균형을 찾아서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SNS를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근황은 화려하고 풍요롭습니다. 때로는 분노와 불공평함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여전히 저렇게 살아가는 걸까?”

이 감정은 매우 솔직하며, 인간적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나의 삶은 그 사람의 그림자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나를 괴롭혔던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계속해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내가나를 괴롭히는 셈이 되지요.

여기서 우리는 마음의 균형이라는 화두를 만나게 됩니다. 삶은 공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공평함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 곧 불행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인생의 공정함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만들어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잘 살아가는 그들을 향한 감정은 질투분노가 아니라 초연함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나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묶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결국 남는 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사람들은 종종 타인의 인생을 보며 자신의 삶을 비교하곤 합니다. 나를 괴롭혔던 이들의 말로를 보며 세상은 결국 정의롭다고 느끼기도 하고, ‘왜 나만 힘든가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반복될수록, 내 인생은 내가 아닌 타인의 궤적에 따라 흘러가게 됩니다.

그보다는, 이제는 내 삶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리고 그 시간들을 견디며 얼마나 단단해졌는지를 돌아보면서 말입니다. 내 안의 상처는 나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용서는 선택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도,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위해 때로는 용서라는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옵니다. 그것은 괴롭힌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며: 그림자를 지나, 빛으로 나아가다.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과 엮였습니다. 어떤 인연은 짧았고, 어떤 인연은 길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상처입힌 사람들과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많은 감정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든, 그 끝이 어땠든,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괴로움 속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슬픔 속에서도 따뜻함을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이자, 승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림자에 갇히지 않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삶...

이제는 그 길을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