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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서로를 오해하는가?

by 목목헌 2025.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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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의 한계와 의미의 왜곡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첫 번째 도구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언어는 결코 완벽한 매개체가 아닙니다. 말을 주고받는 순간, 우리는 이미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제한된 단어 속에 가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괜찮아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안도의 의미일 수도, 속으로는 전혀 괜찮지 않다는 억눌린 감정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뉘앙스를 온전히 해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발화자의 의도와 청자의 해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발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100% 표현했다고 믿지만, 청자는 그 말이 전달되는 맥락과 표정, 억양, 자신의 경험 필터를 거쳐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문자나 메신저를 통한 대화에서는 표정과 억양이 사라집니다. 글자만 남은 대화는 해석의 가능성을 수십 가지로 열어 놓습니다. 그래서 그냥 물어본 건데따지는 말투로 오해되기도 하고, ‘짧게 대답한 것화난 것처럼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언어적 한계는 서로 다른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 감정은 다시 상대방의 반응을 바꾸며 오해의 악순환을 키웁니다.

결국 언어는 소통의 다리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다리 위에서 서로 다른 길로 걸어가게 만드는 미묘한 함정을 품고 있습니다.

이해받는 경험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안정과 연결의 감정입니다.

2. 각자의 렌즈로 보는 세상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이 렌즈는 성장 과정, 교육, 경험, 문화적 배경, 그리고 과거의 상처와 기쁨으로 만들어집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 자리에서 상사가 피드백을 줄 때, 어떤 사람은 그것을 성장을 위한 조언으로 받아들이지만, 또 다른 사람은 나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느낍니다. 이런 차이는 그 사람이 이전에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과거에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경험했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믿음이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입니다. 누군가를 이미 나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호의적인 행동을 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 우리는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색깔로 바라봅니다. 렌즈가 다르기에 보이는 풍경이 다르고, 그 차이가 오해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3. 감정의 파도와 순간의 판단

 

오해는 논리보다 감정에 의해 더 자주 발생합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며, 특히 관계 속에서 감정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같은 말도 부드럽게 들리고, 기분이 나쁠 때는 중립적인 표현도 비난처럼 느껴집니다.

분노나 불안, 상처받은 마음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립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그 순간의 감정 상태로 해석해 버리면,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여유로운 마음으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나를 무시하는구나라고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감정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을 왜곡시킵니다. 게다가 부정적인 감정은 빠르게 전염됩니다. 상대방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면, 우리는 그 태도를 또 다른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감정은 짧은 순간에 관계를 비틀어 버릴 수 있습니다.

 

4. 진정한 이해를 위한 노력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오해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요? 완벽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합니다.

 

첫째, 표현을 명확히 하기입니다. 감정을 숨기거나 돌려 말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도 있었지만,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차라리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이 도움이 됩니다. “괜찮아대신 조금 속상하지만 이해하려고 해와 같이 의도와 감정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경청과 확인하기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었을 때, 바로 판단하지 말고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를 되묻는 습관을 들이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그러니까 네 말은 이런 뜻이야?”라고 확인하는 과정만으로도 해석의 오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 감정의 속도 늦추기입니다. 즉각적인 반응 대신,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한 후 말을 꺼내는 것입니다. 감정이 고조된 순간에는 사실보다 감정이 우선적으로 나와 버리기 때문에, 시간을 두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다른 렌즈를 인정하기입니다. 나와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두면, 오해가 생겼을 때 의도적인 공격이 아니라 관점 차이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 인식 하나만으로도 오해는 훨씬 부드럽게 풀립니다.

 

마치며...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그 세계는 언어의 한계와 인지적 편향, 감정의 파도 속에서 종종 왜곡되고, 그 왜곡이 서로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해받는 경험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안정과 연결의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오해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그림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그림자 너머를 보려는 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서로를 이해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